<들어가기 전, 생각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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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관한 논의가 입시 ‘제도’에 대한 토론으로 축소된 오늘날, 성숙한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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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대한 고정관념,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뼈를 때리는.
<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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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구절!
Y: 76p “성인의 자부심은 똥오줌을 참을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성인이 갖는 권리나 의무에 대해 주로 학술적으로 이야기하고 생각하는데, 내가 갖고 있던 성인의 틀을 깨주는 문장이었음
S: 131p 첫 번째 문단. 우리가 평소에 쓰는 보고서를 설명하는 듯한. 대학와서 썼던 모든 정세민의 보고서를 뚫어보듯^^. 비판의식도 안전하게, 공감의식 보여주고, 교수님이 원하는 식.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들을 담은 글들. 정해진 틀 안에서 사고를 하는 모습 반성하게 됨.
M: 84p 경험에 합당한 언어를 부여하지 않으면 그 경험은 사라지게 된다… 자신의 독특한 경험에 맞는 섬세한 언어로 자신의 경험을 포착하지 않는 한, 그 경험은 사라지고, 그만큼 자신의 삶도 망실된다. 공감이 많이 됐음. 그 사람의 언어 구사하는 방식에 따라 그 사람이 드러난다는 생각.
J: 김영민에 대한 기대가 과했음. 문체도 내 취향은 아니고, 내용에도 큰 깊이는 없음. 뻔한 이야기에 거만함이 묻어있다는 느낌을 받음(내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엄청 인상 깊은 내용이 많지는 않았지만 139p “독서의 적은 인생 그 자체다. 삶은 질투와 경쟁으로 뒤흔들리고, 우리를 독서를 통한 자기 성찰에서 멀어지게 한다.” 141p “사회로부터 도망하기 위해 책을 읽다가.거꾸로 소통을 위한 언어가 풍부해지는 역설이 독서 행위에 있다.”
M: 나도 프롤로그가 제일 잘 썼다고 생각.. 깨달음을 주기 보다는 본인이 잘하고 있음을 보여줌. 칼럼을 모아놓은 거라서 이해가 가긴 함. 기승전결이 딱히 없음
Y: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던 칼럼을 모아서 출판한 책.
S: 제목은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무게감이 있어보이지만 가벼운 느낌이 강함. 공부의 본질보다는 어떻게 스킬 있게 사는가를 다룬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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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독자는 누구?
본 책 서평 구글링을 해보니 누군가는 신입생 필독서라고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제목때문에 남녀노소라고 이야기한다.(평생교육) 그러면 여러분은 독자를 누구로 생각하는지? 동시에 본인에게는 어떻게 다가왔는지?
+ 한 서평에서 “고등학생이 보기엔, 벌써 이런 상황을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 것 같고, 공부와 멀어진 어른들도 마찬가지로 왜 굳이? 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 (즉, 책을 읽을 동기가 크게 와닿지 않을 것 같다. 학문을 하는 사람에겐 강추이다.”라고 말함.
Y: 대학생 신분인 나에겐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학문을 파고드는 대학원생들이나 교수들에게는 공감되는 이야기일 수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뻔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집어주는 것에 불과한 느낌.
J: 뻔한 내용이고 어떤 위치의 사람들이 대상이라고 말하기에 조심스럽지만.. 굳이 필요할 대상은 초등학생 중학생을 가르치는 교사. 글을 잘 쓰긴 했지만 담고 있는 내용들은 우리가 초중교 국어시간에 배웠을 내용(사회자의 역할, 주제 설정, 전개 방식, 단어 선택 등등). 이렇게까지 정제된 단어와 비유적인 표현들로 배우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 모두 초중딩 때 접했을 내용이니 그 아이들을 가르칠 교사에게 도움이 될듯.
M: 청중과 독자의 범위를 설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저자가 직접 짚어줬는데.. 그러나 막상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뚜렷한 독자에 대한 결론을 짓지 못했음. 내가 평가할 입장은 아니다만 막상 자신이 말하고 있는 내용을 스스로는 잘 지키고 있는지.. 되돌아보세용 저자의 언어가 너무 모호하고 뭐 어쩌라는 건지 싶고 자기가 아는 걸 쓴 게 맞나 싶음..
요즘 공대와 거리가 있는 학문의 복수전공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성적과 흥미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중. 자기가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의 경계에서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각을 정리하도록 추천하고 싶은 책.
S: 가장 추천하고 싶은 사람들은 대학원생. 현실을 생각하지 않고 학문 자체에 흥미를 가지는 사람들. 한국은 대학원생이 힘든 처지, 학문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 그렇게 흔들릴 때 추천.
사회생활 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듯. 공부보다 말, 글, 소통 등을 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인간관계를 맺는 상황에 필수 요소.
고등학생들에게는 딱히 필요 없을 듯. 무책임한 행위. 한국 현실, 입시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환경을 개선, 체계를 바꾸지 않고 학문, 공부가 어떤지,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지만 이야기하면 책임감 없는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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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공부’가 가능한가? 진정한 공부만 해야 하는가?
결국 저자가 책에서 말한 이상들이 진짜 현실에서 가능한지 의문이 들었다. 진정한 공부가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언제 가능한가?
“대학이 취업과 무관할 필요는 없지만, 전적으로 취업 준비 기관이 될 필요 역시 없다” P12.
“창의적이 되어라. 그러나 이 말처럼 답답한 요구도 드물다.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P.132
라는 구절처럼 진정한 공부가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현실이 바뀌지 않으면 대다수의 입시 제도에 갇힌 고등학생이나, 취업 제도에 갇힌 대학생들은 저자가 말한 진정한 공부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특히 대학생의 경우 자기가 주력할 전공이 있고, 다양한 학문을 선택할 기회가 주어지긴 하지만, 졸업요건 등 대학제도 때문에 그 기회가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학기 중에 수업만 따라가기에도 벅찬 경우가 많다. 그런데 거기에 내가 관심 있는 책을 읽고, 깊게 공부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경험을 많이 쌓는다?
나는 이 책의 타깃 독자층을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주장은 뭔가 내 입장에서 내 행동을 정당화하는 느낌이긴 하다. 책을 통해 나의 상당한 공부가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를 인정하기도 한다. (EX. 쓰레기같은 나의 보고서 등등…) 그래도 내 공부를 지키기 위한 발악?)
J: 하나고에서 내세우는 게 입시만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경험과 탐구를 통한 진정한 공부를 가능케 하겠다는 것. 나도 입학할 때 그런 기대도 약간은 있었음. 그러나 실제로 하나고를 다니면서는 진정한 공부를 하지 못했음. 내가 똑똑한 친구들과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도 있었지만 학교의 커리큘럼 덕분에 가능했던 것은 아님. 고등학생 신분에서는 입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 같음. 그런데 대학에 온다고 달라지지 않음. 진로를 찾아 헤매야 하고, 취업문을 뚫기 위해 애써야 함. 현 한국 사회에서는, 진정한 공부는 고등학생, 대학생 신분으로는 어려움. 굳이 이러한 시도를 한다면 아주 어릴 때 해야 함. 앞으로 부모가 될 세대에게 필요한 책이 아닐까? 당장 눈앞에 입시라는 제약이 없는 시기가 진정한 지적 탐구와 소통이 가능한 유일한 때 아닐까?
M: 하나고는 체덕지를 내세우고 다른 일반고와 다소 다름. 그때 진정한 공부라는 목표를 품지는 않았지만, 하나고에서 보낸 시기들이 나를 많이 단련시켜주고 발전시켜주었다고 생각함. 목적 자체는 입시를 위한 스펙이었지만, 그 과정 자체는 진정한 공부와 맞닿아 있지 않나? 미지의 세계에서 자신을 구원해내는 게 진정한 공부라는데.. 성향 차이 같은데 난 대학에 온 후 스펙보다는 스스로 원하는 것을 탐구하는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 듣고 싶은 복수전공 듣고 있음(취업에 도움되진 않겠지만..) 원하는 것을 공부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느낌. 고딩 때는 의도치 않게, 대학에 와서는 스스로의 자발적인 의지로 진정한 공부를 일부 체험하고 있는듯.
S: m과 j 다 부분적으로 공감. 하나고 공부는 진정한 공부와 멀다 생각. 압박을 받고 있으면 진정한 공부를 하기 어려운 듯. 하나고 공부를 돌아보면 깊이 파고든 이유도 내가 궁금하기보다는 시험 문제를 틀리지 않기 위해서였음. 책을 읽으면서도 교수는 진정한 공부는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의 탐구심을 바탕된 것이 진정한 공부. 진정한 공부는 일부에게 허락된 듯. 이 교수가 유학을 간다는 것도 돈 많았을 것. 저자의 환경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듯. 그리고 이사람 워낙 머리가 좋아서 입시에 얽매이지 않았을 듯. 취업에도 딱히 어렵지 않았을 듯. 진정한 공부가 본인에게 잘 맞는다는 것을 발견
대학생에서 하고 싶은 것 도전하는 성향, 안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성향. 대학원도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데 선택을 내리는 것은 성향적으로 타고난 듯.
환경도 그런 공부를 하는 데에 용기를 주는 듯.
Y: 인류학과, 사회학과 등 문과대 학생들은 다 경영 복전에 목매는 경우가 많음. 이미 취업에 유리한 전공들 사이의 서열이 고착되어 있음. 성향 차이도 큰 원인인 것 같음. 나도 수강신청을 했는데 원래는 학점을 꽉꽉 채우고 드랍을 안했던 사람인데.. 4년 졸업을 못하겠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그냥 강의계획서, 강의평, 교수님 같은 요소를 안 보고 말 그대로 시간에 맞춘 시간표를 만듦..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공부를 하기는 너무 어렵다는 걸 계속 현실에서 직시하게 됨.
대학의 주요 구성원인 교수, 강사가 학생들에게 진정한 공부를 가능케 하는가?
만약 대다수의 학생들이 대학이 말 그대로 큰 학문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주변에 몇몇 친구를 보면 진짜 본인이 원하는 공부를 찾아서 즐겨하는 사람이 있다.) 책을 쓴 교수님은 중간에 나온(P.73-80) 수업 방식, 책 내용 등을 봤을 때 가능케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외의 교수님들은 과연.. 특히 종종 언급되는 말인, 교수는 학문, 연구를 하는 사람이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이런 생각들로 인해 교사, 선생님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기도 했다.
M: 교수는 가르치려고 하나 학생이 그 학문 자체를 공부로 받아들이지 않을 때. 학생이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있었을 때 대다수의 교수들은 도움을 주려고 하긴 함. 학문에 대해 같은 의구심을 가지면. 즉 전제가 확실할 때. 학생들이 진정한 공부를 하고자 하는.
J: 나는 인강이라는 학습방법을 선호함. 일타강사들을 보면 강의를 기깔나게 함. 같은 내용이지만 전문강사들의 강의력은 놀라울 따름. 교사나 교수는 ‘정보와 지식의 전달’에만 초점을 맞춰서 바라봐야할 직업이 아님. 그런 건 전문강사들의 몫. 교사나 교수는 내가 만나기 전에는 아무런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지만, ‘감화 ‘를 가장 잘 줄 수 있는 사람. 진정한 공부를 알려주는 교수들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에게 그런 가능성과 실마리를 제공해줄 사람이 있다면 그건 교수일 수밖에 없음. 어떤 교수들에게는 간지, 어떠한 아우라가 있음. 평균 이상의 지적 능력을 가졌고, 나보다 먼저 인생을 살아봤던 사람으로써 나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고 주는 사람을 교수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함.
“감화=좋은 영향을 받아 생각이나 감정이 바람직하게 변화함. 또는 그렇게 변하게 함.^^”
S: 수의대에서 존경할 만한 교수를 만나지 못함. ^^. 고등학교와 대학교. 선생님의 역할이 달라진 듯. 대학일기 웹툰. 고등학교 때에는 고기를 먹어야 하면 쌈싸서 먹을만큼 줌. 대학에서는 많은 공부가 야생에 있는 소를 보여주고 잡아먹으라는 비유. 그 과정에서 소를 보여주고 방치하는 것과 조금조금 힌트를 주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다른 듯.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전자가 많은 듯, 무책임한 교수가 많은 듯. 후자의 경우는 진정한 공부가 가능할 듯.
마지막으로 취업을 위한 공부가 나쁜가? 실용성을 위한 공부 등등
모든 사람이 이 책의 타깃 독자층(진정한 공부를 하는, 학문을 하는)처럼 하면 되는 건가? 물론 저자도 이렇게 급진적인 생각이진 않을 듯하고 모든 사람이 그 방법을 그런 경험을 해야 한다 정도의 주장일 수 있지만, 나의 방어기제 중 하나로 든 생각인듯.
M: 기만적인 발언. 저자도 결국 교수라는 직업으로 운좋게 취업한 것인데, 교수의 일이 연구니까 이 사람은 현실적인 필요를 충족하면서 진정한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음. 저자는 본인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바를 성취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생계 유지와 공부가 병행 불가능한 경우가 많음. 저자의 상황만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정답은 아님. 뜬구름 잡는 소리 작작~ 당연히 취업을 위한 공부가 나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욕구를 억누르고 다른 것에 자본과 노력을 투자할 수 있는 거니까..
중학교 선생님한테 공부 왜 해야 됩니까? 물어봄. 공부하는 이유는 공부를 하면서 얻는 지식보다 태도를 배우기 위해서.
한국만의 고질적인 문제가 아닌듯. 라라랜드. 우리 업이 공부와 관련되어 있으니 공부가 무엇인지 생각. 그들만의 진정한 꿈을 위해서 사랑 포기 등. 그를 우리 입장에서도 볼 수 있을 듯. 그냥 꿈을 이룬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듯.
J: 진정한 공부라는 게 뭔지 책에서 정의내리고 시작하지는 않음. 나는 ‘진정한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없음. 그래서 이 질문에 답하는 게 어렵게 느껴지지만.. 대학원생들의 공부를 ‘공부를 위한 공부’, 공부가 목적인 공부라고 표현하는데.. 공부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지, 공부를 해서 어디에 쓰려고 하는 건지 이 2가지 요소를 기준으로 진정한 공부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함. 공부의 종류와 무관하게, 어떤 공부를 하던 인내심과 끈기가 필요함. 그런 태도를 배울 수 있다면, 취업을 위한 공부 역시 진정한 공부가 될 수 있음. 학문이 너무 즐거워서 공부하고 성취해낸 지식이지만, 그것을 올바르지 않은 방향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음. 꼭 실용적인 목적으로, 취업을 위해 공부한 거라고 진정한 공부가 아닌 것도 아니고, 꼭 공부를 위한 공부라고 해서 진정한 공부인 것도 아님.
Y: “취업을 위한 공부가 나쁘다”는 건 이 저자가 구체적으로 주장한 바는 아님. 우리가 앞에서 말하던 맥락에 따라 나온 질문이라는 것을 상기시키고 싶음. 만약 취업을 위한 공부가 본인이 진심으로 흥미와 필요성을 느끼는 공부라면 그건 ‘진정한 공부’일 것. 스스로의 태도를 비판해보자면.. ‘앞으로 마주하게 될 공부를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는가’에 따라 내가 하는 공부가 ‘진정한 공부’가 될지 아닐지가 결정될 수 있을듯.
S: 이 사람이 취업을 위한 공부 나쁘다고 이야기하진 않은 듯. 현실의 벽 때문에 공부나 지적 탐문을 포기하는 태도를 안좋게.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공부가 있는데 그를 이야기하지는 않은듯. 본인의 탁월한 환경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입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 입장을 재단할 수 있을까.
본래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잠재우는 환경
J: 셋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자면.. 진정한 공부의 정확한 정의는 없다고 해도 내가 공부를 하면서 즐거움을 느껴야 함. 취업을 위한 공부가 진정한 공부가 아니라고 할 때, 그 말의 함의는 공부의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한다는 것. ‘취업을 위한 공부->과정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없다->진정한 공부가 아니다’ 이 루트를 탈 수는 있을듯
M: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공부가 지루하거나, 고통스럽거나, 힘겨워도.. 그것도 진정한 공부가 될 수 있음. 거기서도 얻는 게 많을 거임.
J: 내가 말한 즐거움은 ‘쾌감’의 의미가 아님. 지금 당장은 ‘쾌감’을 느끼지 못하고 고통스럽더라도 나중에 끝에 가서 느끼는 그 만족감.
Y: 좋은 학점을 얻거나 성공적으로 취업을 해서 얻는 ‘즐거움’은 진정한 공부에서 얻는 ‘쾌감’ ‘재미’와는 질적으로 다르지 않나?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게 됨.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몇몇은 별빛을 바라볼 줄 안다”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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